-허클베리핀 약사(略史)
허클베리핀은 1997년 이기용(기타,보컬)과 남상아(보컬, 기타), 김상우(드럼) 세 명의 젊은이가 만나 홍대앞에서 결성한 밴드다. 홍대앞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나오던 시절, 허클베리핀은 고유한 색깔을 가지며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1998년 발매된 1집 앨범 <18일의 수요일>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치열한 긴장감과 격렬한 허탈감이 배어있었다. 너바나와 소닉유스에게서 영향받은, 그런지와 노이즈는 앨범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장르였고 무엇보다 비트 해프닝의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음악의 문법은 분노를 넘어선 쓸쓸함의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요소다. 가사도 남달랐다. `절름발이의 꿈`으로 대변되는 쓸쓸한 일상의 그늘을 담아낸 노랫말은 많은 좌절한 젊은이들을 허클베리핀의 공연장으로 불러모았다.
1999년 허클베리핀은 새로운 멤버들로 재정비되었다. 남상와 김상우가 탈퇴하고 이소영(보컬,기타), 김윤태(드럼)이 새로 가입, 현재 허클베리핀의 모습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새로운 허클베리핀은 소닉 유스 대신 영국의 포크 팝 밴드 벨 앤 세바스찬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기도 했으며 바이올린과 키보드를 세션으로 기용해서 보다 풍성한 사운드를 만드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일련의 시도는 2000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나를 닮은 사내>에 충분히 반영됐다. <나를 닮은 사내>는 허클베리핀이 멤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걸어갈 길도 바뀌었음을 보여준 앨범이었다. `길을 걷다` `Somebody to Love`와 같은 노래에서 발견되는 서정성은 이들이 단순한 그런지 밴드로 남아있을 수 없는 밴드임을 말해줬다. 서정적인 멜로디뿐만 아니라 한 음 한 음 뜯어대는 기타 아르페지오와 그 위에 얹히는 바이올린과 키보드는 분노와 증오를 뛰어넘는 미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운드가 변했다하여 허클베리핀이 갖고 있는 정서마저 바뀐 것은 아니었다. “길을 막고 물었지`달라진게 뭐냐고“(`A`)같은, 거두절미의 물음은 그들의 서정성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찬미의 소산이 아니라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이들의 허탈함에서 나왔음을 알게 해줬다. 팬들의 반응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일찍이 허클베리핀의 정서에 매료된 이들은 변함없는 지지를 보였으며, <나를 닮은 사내>의 묘한 서정성을 알게 된 이들이 새로운 허클베리핀의 팬이 되었다.
-허클베리핀 3집 <올랭피오의 별>
<올랭피오의 별>은 빅토르 위고의 시 `올랭피오의 슬픔`에서 제목을 따온 앨범이다. “올랭피오라는 이름이 주는 낯설음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이번 앨범에 수록된 몇 몇 곡들을 들으면서 별과 달처럼 붕 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기용이 설명하는 앨범 타이틀의 배경이다. 쓸쓸함, 개인, 주위와 고립된 개인을 노래한 이 시는 <올랭피오의 별>의 기본적인 정서와 맞닿아있다.
허클베리핀의 첫 번째 자체 제작앨범이기도 한 <올랭피오의 별>은 지난 2003년 중반, 녹음이 완료된 상태였다. 그 후 약 반년에 걸쳐 계속 재녹음과 믹싱이 반복됐다. 밴드의 멤버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소리를 위해서 뉴욕에 있는 청킹 스튜디오에서 작업의 일부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 결과 역대 허클베리핀의 음반중 가장 뛰어난 음질을 갖고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단순히 사운드가 깨끗하다는 의미가 아닌, 멤버들의 머릿속에 있는 사운드가 기술적으로 가장 잘 구현됐으며 듣는 이도 가감없이 허클베리핀이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올랭피오의 별>에는 `Time`으로 시작, `Silas Mano`까지 모두 13곡이 수록됐다. 각각의 노래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 곡들은 만들어는 놨으나 앨범에 수록하기에는 모자란, 이른바 B-Side곡들이 아니라 1집과 2집에 담기기에는 다른 곡들과의 정서적 이질감 때문에 축적해놨던 노래들이다. 앨범 녹음을 앞두고 몰아치듯 만든 노래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다듬고 숙성시켰기에 <올랭피오의 별>은 어느 곡 하나 빠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위해서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었다.
<나를 닮은 사내>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린과 키보드는 물론이요, 탁월한 개성을 갖고 있는 여러대의 기타를 사용, 사운드의 기본적인 골격에 다양한 색깔을 입혔다. 깁슨과 펜더, 리켄베커 등의 명기(名器)가 <올랭피오의 별>의 풍부한 감성을 만들어냈다. 2001년 후반부터 2003년 상반기까지의 적지 않은 시간동안 녹음했으며 그 보다 오랜 기??걸쳐 만들어진 곡들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허클베리핀 음악의 총정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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