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대형 신예 하이브리드 락 그룹 에반에센스 전세계 락계를 경악시킨 충격적인 데뷔앨범 `FALLEN`. 작곡자 벤 무디(Ben Moody)가 보컬리스트 에이미 리(Amy Lee)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10대였으며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김나지움의 학생 캠프 때 여흥 삼아 열린 음악회에서, 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 미트 로프의 `I`d Do Anything For Love`를 연주하는 소녀를 본다. 그 소녀가 에이미였다. 매우 감정적이고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지닌, 위대한 사랑을 노래한 이 곡의 피아노 버전은 벤의 마음을 매료시켜 놓았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에이미가 연주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을 안 그는 앞으로 함께 할 음악 반려자로 그녀를 점찍는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음악의 목표는 같았고, 이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곡을 쓴다.
「Fallen」에서 에반에센스의 변신은 이렇듯 충분히 예고된 것이었다. 이들의 음악에서 독특한 대중성의 기미를 발견한 레이블은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이미 정규 앨범을 발매한 밴드를 다시 끌어들여, 정규 앨범 수록곡과 신곡들을 섞어 신인처럼 다시 출범시킨다. 에반에센스의 특이한 출범은 레이블이 이들을 `키우려고` 한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콜링, 시더, 니클백 등 메인스트림의 젊은 뮤지션들이 집합한 영화 [Daredevil]의 사운드트랙에 `Bring Me To Life`, 비공식 첫 앨범의 수록곡이자 본작에도 수록된 `My Immortal`로 참여진 중 유일하게 두 곡이나 실은 것. 에이미와 동년배이자,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Let Go`를 수록하며 함께 참여한 밴드 12 Stones의 리드 보컬리스트 폴 맥코이(Paul McCoy)가 특별히 피처링해준 세련된 곡 `Bring Me To Life`는 바로 밴드가 처음으로 미는 곡이다. 이 곡은 기존의 에반에센스를 알고 있던 팬들을 놀라게 한 파격과 고전이 공존하는 트랙인데, 멤버들은 업데이트 중인 팬 페이지에 "특별한 게스트 폴이 참여해 준 곡이다. 우리의 음악이 변하기는 했지만 기본 모토는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슬픈 오케스트레이션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락 밴드이기에."라고 언급하기도. 영화 `Daredevil`은 영화 속의 배경 음악과, 밴드들이 모인 사운드 트랙 두 가지로 발매된다. 에반에센스의 음악은 두 번째 사운드트랙에서 만날 수 있고, 블록버스터의 인기와 더불어 새로움을 높이 산 반응과, 전략적인 움직임 덕분에 `Bring Me To Life`는 모던 락 차트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이 때늦은 신인의 출발에 청신호를 보내는 효자 트랙이 되었다. 그냥 출발했다면 분명히 마이너로 처박히거나 미국의 신진 밴드들과 별 차이를 두지 못했을 테지만, 고딕과 현대적인 메인스트림 락을 적당히 섞은 데다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에이미 덕분에 에반에센스는 이토록이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에반에센스가 청자들에게 간절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야기하자. 어찌 보면 20대 초반인 이들은 벼락 스타일 수도 있고, 또다시 고딕락을 도둑질해 간 겁없는 신인으로 간주될 지도 모른다. 혹은 예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보컬리스트를 둔, 주목 끄는 모던락 밴드들의 일원으로 휩쓸려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치부해 버리기엔 이들의 메시지가 쾌락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 에반에센스는 그저 피처링을 한 신진 고딕 밴드일 수도 있지만, 메인스트림 락계에서 보자면 본능보다는 섬세한 내면 표현을 하는 예술가로 보일 테니까. 타이틀 트랙에서 보이듯,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주 소재로 삼은 것을 즐기는 에반에센스의 가사는 사랑과 절망, 죽음의 세계, 그럼에도 흐트러져 가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줄 누군가의 손길을 갈망한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가면서도 구출되며(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가사를 건물에서 떨어져 죽기라도 할 듯한 여인을 구하여 신묘한 밴드 음악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수천 년 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서도, 결코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은 인간과 인생, 그리고 그들이 혼자가 아닌 채 서로 얽혀 있다는 멤버들의 말처럼 신비한 여운을 남긴다. 형체가 없지만 메아리처럼 남아 울리는 음악, 비단 옷자락 속에 섞인 가죽 재킷처럼 당혹스러운 실험성, 손안에 들어오자마자 손가락 틈을 사락거리며 빠져나가는 가녀림, 존재감은 없지만 뒤통수를 살며시 간질여 돌아보게 만드는 조용한 기괴함이 바로 에반에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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